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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연구원

[항공]인간동력항공기 기술동향

  • 매체명 관리자
  • 작성일 2012-01-09
  • 조회 15181

인간동력항공기(HPA: Human Powered Aircraft)는 인간의 에너지와 중력을 이용하여 난다. 인간이 만들어내는 추력이 유일한 동력원이다. 부분적으로 인간의 힘을 이용하여 비행경로가 길어지는 행글라이더도 인간동력항공기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순수 인간동력항공기는 써멀, 상승기류, 고무밴드, 연료전지 등과 같은 하이브리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바람이 없는 개활지에서 오로지 조종사의 페달굴림으로만 장거리 활공을 하는 것이 인간동력항공기의 형태이다. 인간동력항공기의 초기 시도는 높은 비율의 동력 대 중량비를 달성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성공적이지 못했다. 게다가 날개치는 원리를 자주 사용했기 때문에 무거웠을 뿐만 아니라 공력적으로 매우 불만족스러웠다. 2008년이 되어서야 인간동력항공기는 장거리를 성공적으로 비행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레져용이나 상업용보다는 공학적인 도전에 머물러 있다.

최초의 인간동력항공기의 시도는 1923년 오하이오 데이톤의 맥쿡필드에서 프레드릭 게르하르트가 만든 게르하르트 사이클플레인이다. 이 항공기는 7개의 날개를 쌓아서 무려 높이가 4.6 미터에 이르렀다. 조종사는 자전거 페달을 밟아서 프로펠러를 돌렸다. 첫 시험에서 이 항공기는 자동차로 견인되어서 이륙한 후 견인줄을 풀었다. 인간동력만으로 이륙한 것은 6미터 거리를 폴짝 뛴 것인데 이 때 항공기는 겨우 0.6미터 상승했었다. 1934년에 독일의 엥겔베르트 짜스카는 대형 인간동력항공기를 만들었는데, 이 항공기는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에서 보조이륙수단을 사용하여 이륙해서 20미터를 비행했다. HV-1 머피라고 불리우는 헬무트 해슬러와 프란츠 필링거가 만든 비행기는 1935년에 첫 비행을 했다. 할레 안 데어 살레에서 235미터를 날아갔으며, 120회의 비행을 했다. 최장거리 기록은 1937년에 세운 712미터이다. 그러나 이 항공기는 장력케이블을 이용하여 발사되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인간동력항공기가 아니다.

1937년 이탈리아 정부가 지원하는 페달로 1킬로미터 날기 대회에서 에니아 보시의 팀의 항공기는 짧은 거리지만 분명히 순수 인간동력으로만 날았다. 그러나 비행거리가 눈에 띌 만큼 충분하지 못해서 수상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조종사 혼자서 페달 힘으로만 이륙했는지에 대한 논란도 많았다. 공식적인 관측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는 인간동력으로만 비행하는 것은 조종사의 근력과 지구력이 뛰어나야 한다고 여겨졌으며 일반인은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다. 이 대회에서 HV-1 머피가 캐터펄트로 이륙하여 9미터 높이를 날아서 1킬로미터 요구조건을 달성했으나 발사방법 때문에 수상자격을 박탈당했다.

1959년 크랜필드 대학 항공과의 Man Powered Aircraft Group이 왕립항공학회에 가입 초청을 받으면서 왕립항공학회의 Man Powered Aircraft Group이 형성되었다. 이후 많은 성공들이 여성조종사에 의해 이루어지자 1988년에 이름의 Man을 Human으로 고쳤다. 학회의 도움으로 1959년에는 산업가 헨리 크레머가 반 마일 떨어진 마커를 8자 모양을 그리며 비행하는 첫 인간동력항공기에 5만 파운드의 크레머 상금을 내걸으면서 크레머 대회가 시작되었다.

인간동력항공기의 공식적인 정통 이륙 및 착륙은 1961년에 라스햄 비행장에서 비행한 사우스 햄프턴 대학의 SUMPAC이다. 40회의 시도 중 최고의 기록은 650미터이다. 해트필드 퍼핀도같은 해에 SUMPAC보다 일주일 뒤에 첫 비행을 했다. 해트필드 인간동력항공기 클럽은 드하빌랜드 항공사의 직원들로 형성되어서 회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의 기록은 908미터이다. 존 윔페니는 체력이 고갈된 상태로 착륙했으며, 그의 기록은 10년 동안 깨지지 않았다.
퍼핀 2호는 새로운 동체와 날개를 달고서 1965년에 5.2미터 상승을 포함해서 반 마일이 넘는 비행을 수 차례 했다. 크레머는 아무도 주어진 과제를 시도하지 못하자 1967년에 상금을 1만 파운드에서 5만 파운드로 올렸다. 또한 영국국적으로만 참가를 제한했던 것을 국적에 관계없이 참가할 수 있게 대회를 개방했다.

1972년 쥬피터가 1,070미터와 1,239미터를 날기 전까지 시기에는 비행에 성공하는 항공기가 많지 않았다. 1977년 일본 항공기가 날개 끝이 땅에 닿을 때까지 코스의 4분의 3을 완주하기도 했으며, 같은 해 폴 멕크레디가 만든 고사마 콘돌 2호가 처음으로 8자 비행을 하고 2,172미터를 비행하여 첫 크레머 상금을 수상했다. 속도는 느려서 겨우 11 mph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속도를 달성하기 위해서 고작 0.35마력밖에 사용되지 않았다. 두 번째 크레머 상금 1만 파운드도 폴 맥크레디가 1979년에 수상했다. 브라이언 알렌은 맥크레디의 고사마 알바트로스를 타고 영국에서 프랑스로 비행했는데 이 때 직선거리는 36키로미터에 달했고, 비행시간은 2시간 49분이나 걸렸다. 1984년 메사추세스 공대의 MIT 모나크 B 항공기는 삼각형의 1.5킬로미터 코스를 3분 안에 돌아서 크레머 상금의 속도상 2만 파운드를 수상했다. 1984년 홀거 로첼트가 여동생 카트린을 머슬에어 1호에 태우고 비행한 것이 최초의 인간동력 여객 비행기록으로 남았다. FAI에서 인준하는 현재의 비행거리 기록은 1988년에 MIT의 데달러스 88호가 이라클리온에서 산토리니까지 직선거리 115.11킬로미터를 비행한 것이다.

1989년에는 최초의 인간동력 헬리콥터 다빈치 3호가 캘리포니아 공대에서 7초동안 20센티미터를 떠 있었다. 인간동력 헬리콥터의 현재 세계기록은 일본항공학생그룹이 만든 유리 1호로 불리우는 항공기가 가지고 있다. 이 항공기는 1994년 20센티미터 높이를 아무 도움없이 19.46초 동안 떠 있었으며, 비공식 기록은 70센티미터를 24초 동안 떠 있었다고 한다.

인간동력항공기는 지금 미국을 비롯하여 일본, 독일, 그리스, 오스트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호주, 캐나다, 싱가폴, 영국에서 만들어지고 비행하고 있으며, 이 들의 수를 모두 합치면 100대에 달할 것이다. 헨리 크레머의 추가 상금지원으로 왕립항공학회는 다음의 네 분야의 상금을 발표했다.
- 마라톤 코스를 1시간 이내에 주파하는 국제 마라톤 대회: 5만 파운드
- 정상 날씨에서 운용가능한 스포츠 비행기들의 국제 스포츠 항공 대회: 10만 파운드
- 학교간 경쟁 부문: 1천 파운드
- 학생들의 실험적 연구와 공학적 설계를 평가하는 로버트 그레험 대회: 5백 파운드

크레머 대회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동력항공기를 스포츠의 한 분야로서 올림픽 수준의 인지도를 달성하는 것이다. 10만 파운드의 상금을 타기 위해서 지금까지 적어도 네 번의 시도가 있었다. 하나는 버지니아 공대였는데 날개 조립 중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고, 두 번째 팀은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의 제피러스이며, 세 번째 팀은 런던 임페리얼 대학 항공과가 3년째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고, 네 번째 팀은 사우스햄프턴의 열 명의 기계공학과 학생들로 이루어진
팀이 설계와 제작을 진행 중에 있다. 과연 이들 중 하나가 10만 파운드의 상금을 탈 수 있을 것인지 전 세계의 관심과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출처: [1] Human Powered Aircraft,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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