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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항공우주연구원

과학기술과 언론

  • 이름 관리자
  • 작성일 2012-06-13
  • 조회 7398
[아래의 글은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황진영 책임연구원이 대전일보에 기고한 것입니다]

관련기사 링크: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009039


과학기술인에게 있어 연구개발은 고독한 과정이다. 초·중·고등교육 과정을 거쳐 대학 학사 과정은 물론 석·박사 과정을 거치다 보면 이미 30대 초·중반이 된다. 대학원 때엔 연구실에서 수많은 밤을 새우기도 하고 수많은 좌절을 겪기도 한다. '공돌이'라 불리며 자기 분야의 전공분야에 외골수로 도전하고 탐구하면서 연구원의 과정에 입문하게 된다. 정부출연기관은 개인 차원의 연구를 넘어 거대 과학에 대한 도전을 위해 집단 연구를 하게 된다.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전문분야별로 역할을 나눠 수년에서 10여 년을 매진하게 된다. 


연구비 역시 수억 원에서 심지어는 조 단위의 사업도 있다. 쉽게 얻을 수 있고 획득될 수 있는 성격의 연구라면 이러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수백 명의 박사학위 소지자가 몰두할 가치가 있을까? 그만큼 어렵고 그만한 경제적 성과나 국가전략적 성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우주발사체인 '나로호' 사업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가까운 일본의 사례를 보자. 일본은 연속 4차례의 실패를 딛고 1970년 고체로켓 람다-4s를 통해 24㎏짜리 소형위성인 '오스미'의 발사에 성공했다. 일본 최초의 인공위성 발사이자 세계 4번째 성공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람다로켓(고체)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미-일 정상 간 합의를 통해 국제협력 개발로 전환한다. 

첫 번째 단계로는 미국의 델타로켓(액체)의 1단 엔진과 3단 엔진을 완제품으로 직수입하고 2단 엔진만 국내 개발한 N-1로켓을 1975년 발사한다. 두 번째 단계로 델타로켓의 1단 엔진을 기술도입 생산하고 2단 엔진은 델타로켓의 일부를 개량, 3단 엔진은 직수입하여 N-2라 명명하고 1981년 발사하였다. 세 번째 단계로 1986년에는 델타의 1단 엔진을 기술도입 생산하고, 2단 엔진과 3단 엔진을 자체개발한 H-1로켓을 발사한다. 그리고 1994년에 와서야 일본의 순수한 국산 액체로켓 H-II 발사체가 처음 실현된다. 2001년에는 H-II 발사체를 개량한 비용 절감형 우주발사체 H-IIA를 개발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일본은 발사비용을 제외한 순수한 발사체 연구개발비로만 무려 53억 달러의 예산을 투입한 바 있다. 친절한 선생님도 있고 엄청난 연구비 지원을 받아가면서도 고체로켓에 의한 인공위성 발사 이후 24년 만인 1994년, 그것도 N-1, N-2, H-1 등 3개의 모델과 24차례의 발사 경험 축적 후 첫 순수국산 액체 로켓인 H-II 개발에 성공했다. 일본은 H-II 개발 이후에도 3차례나 발사에 실패한 적도 있다. 

우리의 경우를 돌아보자. 일본과는 달리 우주개발에 착수한 시점은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가 성립되어 세계적인 로켓기술이전이 금지된 1987년 이후다. 시작 여건부터 더 열악하다. 과학로켓을 위한 단순 부품, 우주발사장 건설을 위한 장비 등 해외 부품 및 장비 구입 시도는 대부분 거부되었다. 거부 이유도 오랜 시간이 지나 '정책적 이유로 수출 불가'라는 통지뿐이었다. 

나로호 협력에 대해서는 유일하게 러시아만이 협력 의사를 밝혔다. 쉽지 않다는 것도 알았지만, 가능만 하다면 가급적 국제협력을 통해 확보 가능한 부분은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했고, 협력 비용도 빼놓을 수 없는 고려사항이었다. 여러 단계의 과정과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왔다. 기술이전이 없었다고 하지만, 우주센터 발사장 건설과 발사체 시스템통합 및 발사운용기술 등은 러시아와의 협력이 없었다면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인공위성 발사를 위한 우주발사체 개발 경험이 없다. 나로호가 그 첫 번째 프로젝트일 뿐이다. 지금까지 투입된 연구개발예산도 과학로켓사업을 포함하여 일본의 약 1/9 남짓이다. 해외 협력 여건, 인력, 예산 지원 등 어느 것 하나 일본과 비교할 수 없지만, 국민의 기대치는 우리 현실보다 너무 높은 것 같다. 

연구원에게 있어 언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과학기술이 정직하지 않을 때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할 때 언론은 단호히 회초리를 들어야 한다. 그러나 어렵고 도전적인 과제, 국민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과제에는 박수를 보내고 격려를 해주어야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발전한다. 과학기술인이 성공을 담보로 한 과제에만 매달릴 때 그리고 성공한 과제들만이 과학기술계에 넘쳐날 때, 이미 과학기술인의 도전은 사라진 건 아닐까. 

가 보지 않은 길이었기 때문에 미숙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더 나은 길이 있지 않느냐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나로호 개발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현실적 선택이었다. 이번 가을에 나로호 3차 발사를 앞두고 있다. 지금은 비판보다는 격려와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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