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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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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도 시 점

자료배포일

'0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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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5 매

우주인개발단

우주인개발단장

최기혁

042) 860-2217

홍보실

담당

민지선

042) 860-2257

한국 우주인, 우주인 훈련일기 (25편)

한국항공우주연구원(원장백홍열)은 러시아 가가린 우주인 훈련센터에서 본격적인 우주인 훈련을 받고 있는 한국 우주인 고산 씨의 우주인 훈련일기(25편)을 공개했다.

첨부한국우주인 훈련일기(25편)

훈련일기 (고산)

첫눈 내리는 날

<사진1. 모스크바에 첫눈이 내렸다.>

모스크바에 첫눈이 내렸다. 저녁 무렵 간간이 하나, 둘, 흩날리던 눈발이, 한밤중이 되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고 점점 그 세기를 더해갔다. 야밤에 가로등 불빛을 배경으로 떨어지는 눈 구경을 하고 있자니 차분하고 아늑한 느낌이 든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나, 비가 오는 날, 혹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날에 나는 포근한 느낌을 받곤 한다. 언젠가 그 이유를 생각해 본적이 있는데, 낮게 깔린 구름이나 눈 또는 비가 하늘과 땅 사이의 텅 빈 공간을 가득 채워주는 모습에서, 어떤 종류의 대리만족을 얻는 것이 아닐까 하는 '내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던 기억이 난다. 내 안의 무엇인가를 채우고 감싸줄 것들을 찾아 방황하던 때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물론 그때와는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눈 내리는 날의 아늑한 느낌은 변함이 없다. 눈 구경을 한참 하다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보니 온 세상이 순식간에 하얀 겨울이 되어 있었다.

<사진2. 눈이 많이 내려서 제설차량까지 동원되었다.>

<사진3~4. 온 세상이 순식간에 겨울로 변했다.>

<사진5. 숨은 가가린 동상 찾기: 잘 찾아보면 유리 가가린 동상이 보인다.>

<사진6. 강의실에서 내다본 풍경>

눈이 내리는 풍경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게다가 이러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은 그 아름다움에 소중함을 더해준다. 지금 여기서 따뜻한 열대 지방에서는 눈이 내리지 않지만 모스크바에서는 눈을 볼 수 있다는 종류의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면 새파란 대기층이 지구를 감싸고 있는데 그 두께가 얼마나 얇은지를 두 눈으로 뚜렷하게 확인 할 수 있다. (지구를 둘러싼 공기의 대부분은 지상에서 30Km이내에 존재한다.) 지구를 사과라고 생각한다면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층은 사과껍질의 두께 정도에 불과한데, 이 사과껍질의 두께 안에서 구름이 일고 바람이 불고 하얀 눈이 내리는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 얇고 연약해 보이기만 하는 대기층을 지나 조금만 더 나가면 곧 우주공간이다. 보통 지표면에서 100Km이상이 되면 우주라고 말을 하는데, 이곳에는 이미 공기분자가 서로 출동하는 일도 거의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대기 농도가 매우 희박한, 거의 진공에 가까운 텅 빈 공간이 펼쳐진다. 따라서 400Km상공의 우주 속에 떠 있는 국제우주정거장의 창 밖에 하얀 눈이 내리는 풍경은 정말 황홀하긴 하겠지만 오직 우리의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우선 이 정도만 생각해 보더라도 사과껍질의 두께 속에 살면서 가끔 흰눈이 내리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우리가 꽤나 운이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지구궤도떠있는 국제우주정거장을 넘어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우주 속으로 잠시 시선을 돌려보자. 마음 편하게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아도 좋다. 검은 우주는 눈길이 미처 가 닿지도 못할 정도의 깊이와 그 광막함으로 바라보는 사람을 압도한다.

과연 저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속, 내 눈길이 머무는 곳 어디엔가 우리 지구와 같이 눈이 내리고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고 적당한 햇살이 비추이는 그런 행성이 또 존재하고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넓은 우주 어딘가에는 이런 행성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곳에는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감탄할 줄 아는 생명이 살아 숨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믿는다. 이 신비로운 우주 속에 우리 지구와 인류만이 유독 특별한 존재이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제2, 제3의 지구가 존재한다고 하고, 심지어 태양과 같은 별들이 각각 하나씩의 '눈 내리는 행성'을 거느리고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우리 태양과 가장 가까운 별인 '켄타우루스'자리의 '프록시마'라는 별까지의 거리가 4.2 광년(빛의 속도로 4.2년 동안 날아가야 닿는 거리)임을 감안해 볼 때, 그리고 그 별들 사이에 무지막지하게 펼쳐진 공간을 생각해 볼 때,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눈 내리는 풍경을 구경할있는 장소와 우연히 마주치기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해도 그리 큰 과장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도대체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주 오래된 질문과 늘 다시 마주하게 된다.

도대체 어떻게 이 차갑고 막막하기만 한 우주 속에 오아시스 같은 푸른 행성 지구가 존재하게 된 것이고 우리는 어떻게 그 위에 살아 숨쉴 수 있게 된 것일까? 아니 그보다 도대체 어떻게 이 끝을 알 수 없는 우주 그 자체가 '존재' 하게 된 것이며, 그 속에 싹 튼 '생명'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마도 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을 한번쯤은 휘 젓고 지나갔을 법한, 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경이로운 비밀에 대한 이런 질문들은 그 누구도 정답을 알지는 못하지만, 그리고 비록 매 순간 온몸에딪혀오는 일상의 치열함 속에 묻혀 너무나도 자주 잊혀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서 오히려 그 비밀스러움으로 검은 밤하늘조차 온갖 매력으로 빛나게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매력의 빛을 쫓아서 우리는 저 우주 먼 곳으로 꿈을 키우기도 하고, 신비로운 비밀에 한걸음 다가서기 위해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또는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있는 스스로의 내면 깊은 곳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하는 것 아닐까?

첫눈 내리는 날은 마음을 포근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가슴속에서 해묵은 생각들을 다시 끄집어 내 들여다보기도 좋은 듯하다.

<사진7. 아직도 장미꽃잎은 새빨간데 그 위에 하얀 눈이 두껍게 덮였다.>